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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사 - 1972년 8월 3일 사채동결조치한국 경제 역사 2020. 10. 19. 00:32
"박정희 정부는 1972년 8월 3일 이날 0시를 기해 모든 기업의 사채를 "월 이자 1.35%(연 16.2%), 3년 거치 후 5년 분할상환으로 조정한다"
길지 않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경제 역사에 기업의 부채를 국가가 나서 구해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원칙인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한 순간에 무너트린 사건은 1972년 8월 3일 단행됩니다. 바로 8.3 사채동결초지 입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경제 발전의 시작은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후 부터입니다. 해방을 하고 몇 년 뒤 6.25전쟁을 하게 되고 정전협정에 이르는 동안 한국 경제는 전쟁으로 인해 높은 물가 상승과 전쟁에 따른 재산 손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득수준은 형편 없었는데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국내저축에 따른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1961년 구데타로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를 집권하고 경제개발을 최우선 목표로 삼습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했고, 중화학 공업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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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대규모 공업 단지가 들어서기 위해서는 기술과 인력도 필요하지만 바로 돈, 자금이 있어야 사람도 뽑고 기술개발도하고 공장도 지어 올리겠죠? 근데 문제는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도 아닌데 국내에서 어디서 어떻게 돈을 조달해오겠습니까? 그러면 외국에서 자본을 들여와야 할 텐데 전쟁을 겪었고 심지어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을 맺은 가난한 한국에 어느 나라가 돈을 빌려주겠나요?
박정희 정부는 기업들에게 외국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빚보증을 써주게 됩니다. 한국 기업들의 발전을 위해 대신 보증을 써준다. 좋은 취지 인건 확실하지만 과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무리하게 대출을 해 기계 등 비싼 자본재를 들여와 빚을 통해서 경제 발전을 하긴 하지만 1960년 중 후반부터 외국에서 빌려온 돈들의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면서 기업들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정부가 보증을 해준다는 얘기는 정부에게 승인을 받은 기업들 만이 외국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라는 뜻이 되겠죠? 이때부터 기업들이 정부에게 뒷돈을 주며 부패와 비리가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정경유착이라는 단어가 이때부터 쓰이게 되죠.
일반 영세상인은 물론 대기업까지 빚에 의존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연 50% 안팎의 살인적인 이자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글로벌 경기가 어려워지고 1971년 닉슨쇼크로 인해 미국달러 가치가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원화 강세를 가지고 왔고 수출중심의 한국 경제도 충격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부실 기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기업 부실은 이들과 거래하던 은행들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상태로 가다 가는 다 죽겠다 생각한 정부는 고심끝에 철저하게 비밀리에 사채동결을 추진하게 됩니다.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만약 지금 하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심한 잃어버린 150년정도 예상해 봅니다.
"기업과 채권자의 모든 채권 채무관계는 1972년 8월 3일 기준으로 전부 무효화되며 정부가 2000억원을 마련해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단기고리 대출금의 일부를 장기저리 대출로의 대체지원을" 발표합니다.
당시 사채 평균이자가 월 3.84%(연 46%)였으므로 긴급조치에 따라 기업의 사채이자 부담이 3분의 1수준으로 크게 줄어듭니다. 사채를 많이 쓴 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사채를 덜 쓴 건실한 기업에게 혜택이 덜 주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채를 빌려준 입장에서는 정말 날벼락 같은 소식이죠. 자본주의 시장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됐지만, 그 비싼 대가로 기업들의 부도사태를 막을 수 있었고, 나라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어 성장률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은 금융의 기본적 신뢰와 질서를 무너트리는 정책이 였으며 개인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극단적인 대기업 살리기 정책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기업에 투자하는데 있어 집안 돈, 고리사채를 빌려 쓰는 관행을 버리고 자본시장에서 타인자본을 조달할 수 있도록 증권시장 성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오늘은 8.3 사채동결조치라는 자본시장의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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