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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경제사 - IMF 외환위기 (기업편)
    한국 경제 역사 2020. 10. 22. 13:27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후반 3저에 힘입어 기업들의 엄청난 투자와 성장이 지속되었고, 1991년부터 단계적 금리 자유화를 개시했습니다. 또한 OECD의 가입요건을 맞추기 위해 1992년에는 자본시장을 조금씩 개방하기 시작하며 외국인 투자를 받으며 우리나라 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길가는 사람 붙잡아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10명중 6명이 "네"라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업이 사람들을 채용하고 싶어서 난리였습니다.

     

    어딜 들어갈까 고민을 할 정도였죠. 근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제발 저 좀 뽑아주세요" 아닌가요? 한창 잘나가던 대한민국 기업들이 외환위기라는 칼을 맞고 쓰러진 채 지금까지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고시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10%를 웃도는데 정부는 기업들이 더욱더 다양한 산업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실행합니다.

     

    정부가 실제금리보다 훨씬 낮은 공금리로 예금과 대출을 규제하면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지금 중국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정부가 따로 고시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은행은 실세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입장에서는 위험을 떠안고 모든 기업에게 돈을 빌려 줄 순 없습니다. 최대한 안전한 기업, 정치권 로비를 통한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죠.

     

    한 마디로 은행에서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나 일반기업들이 대출을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냥 입구컷이죠 그럼 기업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을까요? 아니죠 3저에 힘입어 이렇게 경기가 좋고 만드는 제품마다 불티나게 팔리는데 사업을 접는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네 제 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합니다. 이 마저도 입구 컷을 당하면 사채시장으로까지 가서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하려하면 이것 저것 준비할 서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 2금융권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별다른 서류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이자가 높다는 게 문제죠. 기업들이 대출을 받아서 그 돈으로 열심히 사업을 해서 번돈의 대부분이 대출이자로 빠져나가니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을 하겠습니까?

     

     

    이러한 정부에 금리 통제에 따른 부작용 확산으로 경제 주체들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졌고 그때 당시 독립성을 보장 받아야하는 한국은행은 정부의 ATM 기기 급이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금리를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결정하도록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보장하라는 한국은행법 개정 100만인 서명 운동으로 번지며 정부는 금융 자유화 압박을 받았고 노태우 정부는 1991년 금리자유화 계획을 확정하며 1996년까지 순차적으로 금리를 완전 자유화 하겠다 발표를 합니다.

     

     

    금리자유화의 첫 타깃으로는 CP할인금리였습니다. 기업의 단기 자금 조달 수단인 CP 금리의 자유화는 CP발행과 유통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규제에서 벗어난 CP금리는 91~180DLF 짧은 만기에도 불구하고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를 웃돌았고 고금리에 목 말라 있떤 투자자들과 개인, 금융회사, 기업의 운용 자금도 CP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게됩니다.

     

    은행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수 많은 중견기업들 그리고 부실 대기업 그룹은 너도나도 CP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빚에 허덕이는 그룹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CP 였습니다. CP는 발행신고 의무 또한 없어 정부의 감시에서 자유로웠고 특히 대중에 익숙한 회사이름을 달고 발행된 CP의 수요는 마르지 않았습니다. 

     

     

    CP의 매력은 다른 금융 상품의 추가적인 금리 자유화 이후에도 꺾이지 않았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그해 모든 대출금리를 자유화 시킵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대출금리를 억누르려는 태도를 보였고 은행 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CP발행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확보한 기업들은 투자를 계속해서 늘려 나갔고 부실한 기업들 또한 추가적인 CP를 발행하면서 새로운 자금으로 기존에 대출금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지속해서 확장해 나갔습니다. 

     

     

    네 우리기업들 잘나갔습니다. 

     

    글로벌 낮은 금리와 저유가, 플라자합의를 통한 엔화강세 이게 평생 갈 줄 알았나 봅니다. 전 세계 경제가 우리나라를 도와주는데 한국 수출 기업들에게 있어 수출 확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당시 세계화 혹은 세계경영이라는 모토와 맞물려 기업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 확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1995년 1월 일본에서 고베대지진이 발생합니다. 이때 일본은 안그래도 슈퍼 엔고인데 미래가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985년 4월 국제공조가 일어납니다.

     

     

    G7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우리 안그래도 버블 터지고 나서 힘든데 지금 지진까지 나서 진짜 너무 힘들다 엔화 약세 유도 좀해줘 " G7국가들은 일본의 상황을 감안해 일본 엔화 약세 유도를 동의하게 됩니다. 플라자 합의와는 정반대의 정책 결정이 나온거죠. 그래서 1995년 4월 이 합의를 역플라자 합의라고 부릅니다. 

     

     

    역플라자 합의 이후 초강세를 보이던 엔화 가치는 바로 약세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달러당 80엔 수준으로 엔화 강세 현상을 보였으나 합의 이후 1995년 9월에는 달러당 100엔을 넘는 수준으로 약세가 유도되고 1997년에는 140엔까지 상승합니다.

     

    이러한 급격한 약세는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는 최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여태 몇 년간 엔화가 강세가 유지 됐으니 당연히 많은 기업들은 과거를 통해 미래 또한 엔화강세가 유지될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 또한 강한 성장세를 이어 가면서 미국 중앙은행 FED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합니다. 수출로 많은 돈을 벌던 기업들은 엔화 강세를 기대하며 공장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었는데 얼라? 급격하게 엔화가 약세가 되면서 기업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예상치 못한 엔화 약세를 통해서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서 해온 기업들은 투자대비 큰 이득을 거두지 못하면서 재무 상황이 어려워 지게 됩니다.

     

     

    1994년 미국의 금리 인상을 통해 미국 쪽으로 글로벌 자금들이 쏠리게 되고 이머징 국가에서 돈이 빠져나가며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이 여파로 인해 1995년 1월 멕시코 페소화 위기가 발생하고 미주와 유럽을 훑고 1997년 3월 태국이 흔들리고 7~8월에는 인도네시아가 휘청거렸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 이머징 국가들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엄청난 빚을 통해 고속성장을 해오고 있었고 대부분 수출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던 한국기업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글로벌 시장이 한 순간에 얼어 붙게 됩니다. 팔려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사는 사람이 존재 해야합니다. 그래야지 전체적인 순환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팔려는 사람만 존재할 뿐 사려는 사람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엄청난 빚을 떠안고 기업들은 대출이자 조차 갚지 못하게 되고 이때부터 한보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대농그룹, 기아그룹, 해태그룹 등 한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위환위기는 기업들의 문제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종합금융회사(종금사)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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