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국의 경제사 - IMF 외환위기 종금사편
    한국 경제 역사 2020. 10. 23. 15:22

     

    기업들은 높은 은행 문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엄청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기업들의 자금 줄 역할을 하며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종금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종합금융회사는 외화 조달부터 여,수신까지 금융 업무 대부분을 취급할 수 있는 금융기관입니다. 종금사의 탄생은 박정희 정부 때 외화 조달을 위해 1975년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고 1976년 한국종금을 시작으로 6개의 종합금융회사가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초기 종금사들은 선진국 금융회사와 자본을 섞어 대외신인도를 개선하고 기업에 신용대출을 제공하며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종금사는 어음관리계좌 운용과 발행어음 판매 방식으로 은행처럼 예금도 받기 시작했고 1993년에는 100명이 안되는 소수의 인원으로 6개사 합산 1,128억 원의 순수익을 내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출범 첫 해인 1993년 "지방 단자회사의 종금사 전환 방안을 발표"하게 됩니다. 지방 중소기업에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방에 있는 영세한 24곳의 단자회사를 종금사로 둔갑시킵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존의 종금사와는 달리 단자회사들은 기본 체계도 없고 업무영역도 부실채권을 거래하는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는 새로 전환된 종금사들에게 경쟁력을 확보해주기 위해 외화자금을 당길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게 되고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 외환위기 냄새가 조금씩 올라옵니다. 금융에 관련된 규제가 약해지면 아무래도 규제가 많던 때 보다 방만하게 자금이 사용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3pGQ5LjV1w

     

    새내기 종금사들은 국제금융을 맡을 직원의 채용공고를 냈고 본격적인 외화 조달이 시작됩니다. 그게 바로 말로만 듣던 달러 빚입니다. 

     

    한국경제가 엄청나게 성장을 하니 기업들 또한 돈에 대한 수요가 커집니다. 종금사는 생각을 합니다. 보통 은행들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장단기 금리차이만큼 이득을 보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의 시장금리는 10%를 웃돌았고 장단기 금리차로 큰 마진을 남기기 힘들었습니다.

     

     

    종금사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해외에서 달러를 단기로 조달을 해서 원화로 바꾼 뒤 기업들에게는 장기로 빌려주는 방안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들어서 해외에서 자금을 2%에 끌고와 기업들에게 장기로 8% 대출해준다면 기업들은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할 수 있게 되고 종금사 또한 6% 금리차를 먹게 되니 앉아서 돈을 먹게 되느 구조였습니다.

     

    이때 당시 우리나라는 거의 고정환율제도에 가까웠기 때문에 환에 대한 위험도 없었죠. 달러 빚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환율 변동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종금사가 미국에서 100달러를 단기로 빌린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지금 환율이 1$=1000원이면 원화로 바꿔 10만원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달러 빚을 갚아야 하는데 달러환율이 1000원에서 2000원이 되면 앉은자리에서 부채가 두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원화로 달러를 사서 이자도 내고 빚도 갚아야 하는데 1달러 사는데 2000원이 되니 말 그대로 노답인 상황이죠 하지만 이때 우리정부는 환율이 거의 움직이지 않게 개임을 하고 있었고 이 말은 환위험에 노출이 안된다는 뜻이니 종금사 입장에서는 개이득이었습니다. 

     

     

    은행과 달리 종금사들은 각종 규제가 없었기에 그 당시 70%이상을 단기(1년미만) 외채로 자금을 조달했고 자금을 통해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기 시작합니다.

     

    해외에서 단기로 조달하는 것이 장기로 조달하는 것보다 훨씬 이자가 낮았고 만기가 다가와도 쉽게 연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종금사들끼리 경쟁을 하기 시작했고 기업에게 대출이자를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노력을 합니다. 기존 높았던 수익률은 경쟁을 통해 조금씩 장단기 금리차를 통한 마진이 줄어들었고, 일부 종금사들은 한국과 비슷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있는 태국과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정크본드에 장기로 투자하는 말도 안되는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이러한 위험한 투자들은 건전한 영업에 집중했던 종금사들에게도 번져나가 종금사 해외 증권투자는 1996년 22억 달러로 전년 대비 8배로 급증을 하게 됩니다. 

     

     

    종금사에게 3가지만 조심하면 세상만사 행복한 플랜이었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대출해준 기업들이 한꺼번에 망하는 경우 두번째로 종금사들이 투자한 이머징국가들이 망하는 경우, 세 번째로 해외에서 단기로 대출을 받았는데 만기 연장을 못하게 되는 경우. 이 3가지가 동시에 터집니다.

     

     

    과도한 빚으로 고속성장을 하던 기업들 하나 둘 씩 부도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그 기업에 돈을 빌려준 종금사들 어떻게 될까요? 해외에서 단기로 조달한 달러 빚을 갚아야 하는데 기업들이 다 배를 째버리니 당장 현금화할 유동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눈치 빠른 해외 금융회사들은 종금사가 위험한 걸 감지하고 단기로 빌려준 달러를 만기 연장 없이 회수하기 시작합니다. 

     

     

    종금사들이 1997년 8월까지 연쇄 도산한 7개 대기업그룹에 빌려준 돈은 6조원이 넘었고 이때부터 종금사들은 서로 달러를 더 비싼 값에 사겠다고 은행에 달려들면서 고정환율과 같았던 우리나라 환율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투자를 한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네는 산업이 경공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는데 94년 노동하나는 끝내주는 중국이 위안화를 폭력적으로 절하하면서 수출시장을 다 선점했고 그때부터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은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무역적자 확대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1997년 3월엔 태국이 3~7월엔 인도네시아가 쓰러지고 종금사가 투자한 이머징 시장의 하이일드채권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하필... 이제 막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 3가지 리스크가 동시에 터질수가 있을까요..

     

    종금사의 위기는 한국 금융시장 전체를 마비 시켰고 어느 순간 자금 유동성이 완전히 끊기게 됩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하게 됩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을 듣던 종금사들은 모두 수술대에 오르고 2001년 6월까지 종금사에 모두 12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됩니다. 참 아까운 돈이네요^_^ 종금사의 미래를 보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의 돈은 모두 허공으로 날라갔고 사라진 29개사 중 28개사는 상장사였습니다.

     

    이렇게 종금사가 쓰러져갈 때 정부는 뭘 하고 있었을 까요? 다음시간에는 정부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