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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사 -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 (정부편)한국 경제 역사 2020. 10. 24. 14:26
보통 수출로 먹고 사는 그 당시 대부분의 이머징 국가들은 환율이 고정돼있는 걸 선호합니다. 이머징 국가들은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들인데 환율이 오르는게 좋은게 아닌가?라고 의문이 들게 되죠. 하지만 개발이 한창인 이머징 국가들의 수출기업들 같은 경우 자국의 통화가치가 절하되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도 좋지만 환율이 너무 변동 적인 것 보다는 환율이 안정되있는 것이 미래의 예측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어집니다.
투자와 대출 수출계약에 있어서 굉장히 편하다 할 수 있죠. 해외에서 투자를 하는 외국인들 입장에서도 이머징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달러를 원화로 바꿔 한국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들어오고 싶은데 환율 변동이 너무 심하면 환율 때문에 쉽게 손이 안가죠.
예를 들어서 한국채권 금리가 연 10%인데 원화가 달러대비 20%가 절하가 되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10%의 손실을 보는 겁니다. 혹시나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은 환율 뿌수기 프로젝트 한 번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oO3JR-MEFI
이런 고정환율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안전하게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죠 왜? 시간이 지나도 1$=1000원이 유지되니 1$=2000원이 될까봐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거죠
1990년대 당시 이머징 국가들은 대부분 정부가 직접 외환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에 고정환율 성격이 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때 1$당 800원 정도의 밴드를 형성하며 정구가 조절을 했었습니다. 지금 홍콩달러가 페그제를 통해서 자국의 통화가치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환율적인 성격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일단은 한국내에 외환보유고가 넘쳐흘러야 합니다. 달러에 우리나라 원화를 고정시켜 놓으면 달러가치가 높아질 때 우리나라 원화 가치 또한 높아져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달러가치가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당연히 달러매력도가 높으니 원화를 달러로 바꾼 뒤 자국으로 돌아가겠죠? 그러면 한국내에 원화는 풍부해지는데 달러 부족현상이 생깁니다. 지금 같이 변동환율제를 사용한다면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겠죠 하지만 이 때는 고정환율제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원화가치가 떨어질거 같은면 정부가 개입을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외환 보유고에 있는 달러를 팔면서 원화를 사들이면 800원대를 맞출때까지 반복을 하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제도를 통해 한국은 나락으로 가는거죠. 이 고정환율을 지키기위해 한국 정부가 개입했고 기업들이 파산하고 금융기관 전체가 흔들려 달러부채를 갚아야 하는데 그 부채를 외환보유고로 도와주다가 결국 동이나 버린 겁니다. 이때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300억 달러 정도 있었는데 이 정도로는 택도 없었던 거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계속해서 경기가 좋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1995년 역플라자 합의로 10년간의 엔화강세를 한 순간에 엔화약세로 전환시켰고 달러화에 환율을 고정해온 많은 신흥국 통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로 돌아서며 가격경쟁력을 회복한 일본 제품은 다시 세계 곳곳에 수출이 되며 신흥국 제품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부터 미국이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면서 1995년에는 연 6%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이 메세지를 달러화 자산을 매입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 투자자들은 1994년 말 6,673억 달러에서 3년 뒤 1조 2416억 달러로 급증했고 다우지수는 4,000에서 8,000선으로 뛰어 올랐습니다. 미국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지만 신흥국 입장에서는 달러화에 묶어둔 자국의 통화가치들이 동반 상승하게 되어 자국통화가치 강세를 가지고 왔고 이러한 결과로 이머징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또한 1995년 당시 사상 최대인 102억 달러 적자를 냈고 OECD 가입을 확정한 뒤 1996년에 경상수지 적자는 절정에 치닫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대외채무는 1994년 808억 달러에서 1996년 1,448억 달러로 급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멕시코가 무너지고 다음은 태국 인도네시아가 페그제를 포기하며 IMF 구제금융신청을 공식 발표 합니다. 그리고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도 IMF 구제 금융신청을 공식 발표하게 됩니다. 1997년 12월 23일에는 달러당 1964원까지 치솟으며 공황상태에 빠졌고 종합주가지수는 폭락을 합니다.
1997년 11월 14일 강경식 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김영삼 대통력에게 구제금융 신청 계획을 보고했고 11월 16일 IMF와 극비 회동을 갖고 구제금융 신청에 합의하며 국가 부도 선언 디데이를 11월 19일로 입을 맞춰 놓습니다.
그런데 11월 19일 강경식 부총리는 갑작스럽게 경질 통보를 받게 되고 기자회견 전에 청와대는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을 새 경제 부총리로 임명하며 임명 6시간 만에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IMF 도움 없이도 국난 해결이 가능하다는 기존 합의를 완전히 뒤엎는 내용을 발표합니다.
IMF와의 사전합의 사실을 알고 있던 고위관료들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은 미국과 IMF 가 한국정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는 계기로 발전하게 되고 구제금융 협상은 이때부터 더욱 강합적인 요구로 돌변하게 됩니다.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전방위 적으로 노력을 하며 일본에 긴급 자금지원 요청을 하지만 그 당시 일본도 버블붕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와 같은 이머징 시장에 투자를 많이 해논 상태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돌아오는 답변은 IMF의 틀 안에서 지원하겠다 였습니다.
IMF 보다 더 나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코스피는 450.64로 주저 앉으며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니 정부는 기다리지 못하고 IMF와 실무 협상에 들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이중 플레이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같은 시도는 더욱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죠. 1997년 12월 3일 마침내 경제 주권 포기를 뜻하는 합의문에 최종 서명을 하게 됩니다. 합의문 내용을 간략하게 보자면 금융회사 구조조정 금융시장 완전 개방 재정긴출 대기업 구조조정 콜금리 연 25%인상 외국인의 적대적 기업인수 허용 외국 금융회사의 국내 금융회사 인수 허용 등을 요구 합니다.
그리고 차기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등 에게도 자금지원 협정 준수 이행 각서에 서명하도록 요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이행해야 자금지원을 해주겠다고 발표합니다.
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IMF와 재협상을 하겠다 선언하며 배짱을 보였지만 이러한 행동은 강한 불신을 안겼고 해외 금융회사들은 계속해서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투자 부적격 등급(Ba1)으로 두 단계 떨어트리며 한국에게 압박을 주기 시작합니다.
환율은 1962원까지 치솟았고 종합주가지수는 사상 최대폭인 7.5% 하락한 366.66으로 폭락합니다.
아무리 김대중대통령이라도 지금 당장 기업도 죽고 금융기관도 죽고 국가가 부도가 나겠는데 어쩌겠습니까? 태도를 완전히 바꾸며 모든 조건을 다 지키겠다 약속하며 100억 달러를 조기 지원받게 됩니다. 이 외환위기는 살인적인 고금리를 가지고 왔고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국의 실업자는 1997년 말 57만명에서 1999년 180만명을 돌파했고 경제성장률은 역사상 최악인 -5.1%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 정부, 금융기관의 태도를 크게 바꿔놓습니다. 외환위기 전과후는 같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체질이 변화하게 됩니다. 외환위기의 상흔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부작용으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죠.
그 부작용들은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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