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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언제 증권거래를 시작했을까?한국 경제 역사 2020. 10. 17. 02:02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증권거래를
시작했을까요?
조선 정부의 허가 없이 일본은 쌀의 품질 및 가격 표준화를 명분으로 일본인들이 모여 1896년 인천항에 인천미두취인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인천미두취인소는 현물 없이 쌀을 사고파는 현재의 선물시장과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1700년대부터 존재했던 선물시장이 였기에 인천미두취인소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빼앗아 갈 수 있는 투기장이었습니다.
시세 또한 오사카도지마취인소에서 날아오는 전보로 시세를 정했는데 이 전보를 미리 알아 이득을 취하는 일본인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자본주의체계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들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따는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논과 밭을 팔고 인천미두취인소로 집합합니다.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투기열풍이 불었고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쌀값은 요동치게 되는데
우리는 늘 그렇듯이 이럴때 사람들의 투자심리를 더욱 자극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기열풍은 반드시 버블을 만들게 되죠
미두취인소에서 조선인들 중 돈을 딴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패가망신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돈을 딴 사람들 또한 결국은 재산을 탕진합니다.
이렇게 조선에서 난 쌀들의 절반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인천미두취인소는 중일전쟁으로 인해 1939년 일본이 직접 쌀을 통제하면서 문을 닫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쌀 뿐만 아니라 일본기업의 주식도 사고 팔았습니다. 바로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이 등장했죠. 1차세계대전이후 엄청나게 돈을 벌다가 1929년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경영난에 빠지게 됩니다.
그 시기 일본은 본격적으로 만주영토를 개발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1932년 일본제국의 동경증권취인소가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과 인천미두취인소를 하나로 합치며 경성(명동)에 조선증권취인소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조선증권취인소에서 증권거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에게도 끝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2차세계 대전이죠. 1차 세계대전 때의 경험으로 많은 조선인 투자자들은 일본은 막대한 군수물자를 수출하면서 엄청난 경제 대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의 증권시장의 열기는 하늘을 뚫을 기세였죠
이 때 장세를 한 순간에 뒤집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격합니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죠
연합군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마침내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은 해방을 맞았는데 조선증권취인소 또한 즉시 해산 됩니다.
물론 일본기업에 투자한 조선인들의 주식 또한 증발하게 되죠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린 인천미두취인소를 통해
19세기 말 쌀 거래를 시작으로 반세기 동안 조선인들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있는 자본시장은 완전히 암흑기에
빠져듭니다.
해방 후 한국인들은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자본시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1947년 한국증권구락부를 결성해 자체적으로 증권매매 규약을 마련하고 국내기업들의 주식을 수집하여 매매하기 시작했고, 경성장직, 조흥은행(현 신한은행)등의 주식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1949년 1호 증권사인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을 설립했는데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과 함께 다시 자본시장의 활성화가 무산되는듯 했지만,
전쟁통에 국내 증권산업이 뜻밖의 호황을 맞이하게됩니다. 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보니 서울이 폐허가 돼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 몰려든 피란민 사이에서 "지가증권"과 "건국국채" 거래가 급증한 결과 였습니다.
지가증권은 이승만 정권이 토지 개혁 때 정부에서 매수한 토지의 보상금으로 지주에게 발행한 유가 증권(채권)입니다.
전쟁이 난 상태에서 종이 쪼가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전쟁 상황에서 채권은 그냥 종이에 불과합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전쟁 누가 이길지도 모르는 이 전쟁에 당장 생계가 급했던 지주들은 헐 값에 지가증권을 팔고 현금화 시킵니다. 물론 반대로 지가증권을 대량으로 사겠다는 사람들도 존재했죠. 대표적인 사람이 SK그룹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 한화그룹창업자인 김종희 회장 등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통에 정말 대단하네요
전비보달을 위해 국가가 발행한 건국국채 또한 헐 값에 팔며 현금화 시킵니다. 대부분 이런 지가증권과 건국국채를 산 사람은 증권업자였고 부산에 자리잡은 대한증권은 엄청난 성공을 하게 되며 그 소식을 듣고 증권회사들이 하나 둘 씩 생기게 됩니다. (고려, 영남, 국제, 동양)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맺고 증권사들이 모여 대한증권업협회를 설립하며 지가증권과 건국국채를 거래하기 시작했고 1956년 2월 대한민국 최초의 거래소인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를 설립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해방직후까지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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