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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경제사 - 금융위기를 극복한 한국 그리고 시작된 차화정랠리한국 경제 역사 2020. 11. 3. 15:58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미국 FED에는 불경기에 대해 연구한 버냉키 의장이 있었습니다. 경기 침체 혹은 과열을 막기위해 항상 중앙은행에서 해오던 금리 인상 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뿐 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통화정책,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정책이 발표됩니다.
바로 비전통적 통화정책 양적완화 입니다.
양적완화를 지금은 정말 무식하게 그냥 시중에 기존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공급해준다라고 생각합니다. 양적완화와 같은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유동성은 글로벌 금융시장 곳곳에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글로벌리 달러 유동성이 넘처나게 되는거죠.
이때 미국금리는 제로였습니다. 한창 개발 진행중인 이머징 국가입장에서는 자국에서 대출을 받는게 좋을까요? 미국에 있는 뉴욕금융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게 좋을까요? 아마 후자 일겁니다. 모든 국가들이 달러 유동성을 공급받고 빠르게 회복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부터 꾸준히 투자를 통해 경제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 성장에 한국의 조선, 철강, 기계 산업들이 수혜를 받으며 코스피 2000을 달성하게 되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수출은 냉각되고 이때 자국민들의 내수 소비로 경제발전을 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만 남았겠죠? 중국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부채를 통해 투자를 미친듯이 늘리며 제조업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한국의 중공업 제품 수요도 크게 늘어나게 되고 중국 덕분에 우리나라 또한 빠르게 금융위기를 벗어나게 되죠.
여기서 우연인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본의 금융기관들 특히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해외자산을 매각하면서 받은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서 자국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엔화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며 빠르게 엔화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달러당 75엔을 기록하며 1995년 고베지진 당시의 80엔을 무너뜨리는 슈퍼엔고 상황이 벌어지죠.
자 글로벌 상황을 대충 보셨나요?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엔화는 초강세이고 이 시점에 중국은 다시 대규모 중화학 공업 등 제조업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기업들 자동차, 화학, 정유 기업을 중심으로 수출경쟁력을 앞세워 강력한 수출성장세를 가지고 옵니다.
중합주가지수는 2011년도 상반기에 2200포인트를 사상 최초로 넘기게 됩니다. 이러한 상승세를 차화정랠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을 펼치며 고환율 정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고환율정책은 수출에는 긍정적이지만 수입물가를 높이는 부작용 또한 존재합니다.
2010~2011년도에 달러약세로 인해 달러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가격이 상승했고 이 영향으로 2010년 하반기부터 국내물가는 지속해서 상승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환율까지 유지하니 서민들 이때 많이 힘들었죠. 대외적으로는 좋은 시기였지만 대내적으로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2011년 저축은행사태가 있었죠. 2003년부터 시작한 유동성 장세는 부동산 시장까지 번졌고, 부동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때부터 저축은행은 건물을 올리는 시행사, 건설업체들에게 대출을 과감하게 늘렸습니다. 건설업체 대출을 포함하는 부동산 관련 여신비중은 전체의 50%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사는 원리금 상환 여력을 갖추지 못한 곳들이 많았고 그 대가로 저축은행에게 연 10%대의 높은 이자를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건물의 분양 성과가 나오면 시중은행 대출로 갈아타면서 기존 저축은행 대출을 갚았습니다. 부동산 호황기로 저축은행은 막대한 수익을 안겼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건설업체들이 하나씩 쓰러졌고 부실채권들이 무더기로 쏟아졌고 저축은행들은 버티고 버티다 같이 쓰러집니다.
이때 저축은행은 일반 시중은행보다 예금 이자가 높았고,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이자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자녀결혼자금, 퇴직금, 평생 모은 돈을 저축은행에 예금을 하게 되죠. 피땀 흘려가며 번 돈이 한 순간에 사라진 사건이 저축은행사태 입니다.
2012년 10월 집계 기준 예금자 피해금액은 예금자보호법(5,000만원 초과)을 초과한 5131억원, 저축은행 후순위 채권 투자손실 8571억원이었습니다.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총 27조 2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31개 저축은행을 정리했고 이 중 약 15조 원은 2019년 말 기준 여전히 미 회수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2010~2012년도는 기쁨과 슬픔이 같이 공존했습니다. 2012년 이후 한국도 저성장시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걸까요? 암울했던 2010 중반 한국경제는 다음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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