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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의 시작은 플라자합의 이후 부터이다.
    일본 경제 역사 2020. 11. 27. 10:30

    미국은 냉전체제가 격화되자 일본을 적국에서 잠재적 동맹국으로 전환하며 아시아 패권을 완벽하게 잡기 위해 일본경제재건에 힘쓰게 됩니다. 일본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은 전범기업들의 부실화된 채권들을 100%로 인정해주며 전쟁으로 부실해진 기업들의 투자를 다시 활성화 시켰고, 일본환율을 1달러당 360엔으로 고정 시켜 초 저 환율을 유지했습니다. 

     

     

    일본경제사 -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일본 또한 존재 할 수 없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에 GHQ가 설치되어 일본을 점령하며 통치를 하게 됩니다. GHQ의 초기 목적은 일본을 다시는 회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monsterofcapitalistic.tistory.com

     

    이러한 저 환율로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생긴 일본은 수출대마왕이 되며 글로벌 시장을 싹쓸이해갑니다. 일본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1,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며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지만 일본 정부는 적자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며 기업들에게 금융지원을 했고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 자원 절약과 같은 기술 개발과 공장 자동화 등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되는데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은 원가를 절감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본기업들과 일본 제품의 국제경쟁력은 더욱더 높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일본이 왜 지금 까지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에게 없어서는 안될 은인 미국에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 1971년 금본위제가 무너지고 닉슨쇼크 때부터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세계 각 국이 인플레이션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이때 미국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매파 중의 매파 폴 볼커가 연준의장으로 임명됩니다.

     

    폴 볼커 당시 미국 기준금리

    폴 볼커는 물가를 잡기위해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당시 10%를 밑돌던 기준금리는 20%에 육박하게 됩니다. 지금은 금리를 올린다고 해봐야 0.25%이고 이 정도 올려도 죽니 사니 하는 마당에 이때는 한 번에 3~4프로를 올리니 미국 내에 있는 제조 기업들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기준금리가 20%인데 당연히 기업이나 가계에 적용되는 대출금리는 20%보다 더 높았겠죠?

     

     

    이 대출금리를 감당하면서 미국 내에서 20%가 넘는 마진을 내며 공장을 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정신나간 기업들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제조업들은 멕시코나 이머징과 같은 인건비가 저렴한 곳으로 다 나가버리고 미국내에 중소기업의 40%이상이 도산을 하며 미국 제조업이 박살이 납니다.

     

    미국 경기가 박살 나니 모든 상품에 대한 수요는 급감했고 이렇게 위축된 수요는 가격 하락현상을 가지고 오며 결국 물가는 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미국의 폭력적인 금리인상이라는 통화정책으로 달러의 지속적인 강세에 베팅을 한 전 세계의 돈들이 미국으로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달러 인덱스

    당시 달러에 대한 보유 매력이 높아 미국 달러는 초강세를 보였고 뒤에 배울 플라자합의까지 80~85년 동안 달러의 가치가 50%나 절상됩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달러강세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국가가 바로 서독과 일본입니다. 서독과 일본은 자동차, 전자 산업에 힘을 실으며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달러강세로 저렴해진 서독와 일본산 제품은 전 세계 시장으로 팔리기 시작했으며 미국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성능 좋은 일본과 서독의 제품들이 사랑을 받게 됩니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적극적인 감세정책안을 내놓으며 경기부양을 꾀하지만 재정정책에 필요한 돈들이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게 아닙니다. 세금수입이 정부지출에 미치지 못하니까 재정적자가 계속해서 발생했고 이러한 재정적자는 점점 심해집니다.

     

    심지어 물가 잡는다고 했던 금리인상은 미국내 많은 제조업들을 도산시켰고 계속되는 달러강세로 인해 미국 내 수출 기업들은 일본과 서독 기업과의 수출경쟁력에서 밀려나며 무역적자 또한 심해졌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채권국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채무국이 되며 빚을 내어 소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함께 심각해지는 상황, 이것을 쌍둥이 적자라고 합니다.

     

    미국 쌍둥이적자

    미국 입장에서 가만히 적자가 발생하는 걸 지켜볼 순 없었고 이러한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자유무역)를 내세우던 레이건 행정부가 갑자기 보호무역을 내세우며 관세부과를 통해 수입장벽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미국으로 엄청나게 자국의 제품을 수출하는 서독과 일본이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처럼 큰 시장에서 관세를 부과한다는 의미는 장사하지 말라는 의미겠죠? 당시 미국은 물가를 잡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관세를 높인다면 물가는 당연히 다시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보호무역을 내세우며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가들에게 압력을 줬을까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미국이 원한 건 보호무역도 무역전쟁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달러의 약세와 무역 불균형 해소였습니다.

     

    대일 무역적자

    미국은 적자가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보니까 서독과 일본이 미국을 통해 엄청난 무역흑자를 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985년 9월 플라자호텔에서 G5 정상회담을 개최 합니다. 미국은 서독과 일본을 앞에 앉혀 놓고 너희도 이제 우리한테 물건 팔기만 하지 말고 우리꺼도 수입하라고 합니다.

     

    보호무역을 안 할 테니 너희 통화가치 절상 좀해 라고 말을 하는거죠. 환율은 상대적입니다. 만약 엔화와 마르크화의 통화가 강해진다면 달러는 약세로 가게 됩니다. 

     

     

    지속적인 달러 강세가 약세로 전환 된다면 기존에 왕창 돈을 찍어 빚을 냈는데 그 빚을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달러가 20%로 약해지면 빚이 20%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었고 심지어 달러약세는 미국의 수출기업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무역적자 또한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서독 입장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제품을 팔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플라자합의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엔화의 가치를 계속해서 절상시켰으며 달러당 250엔 수준의 엔화가치는 1988년 초에 120엔 수준까지 떨어지며 거의 50%가량 절상됩니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엔화 강세에 베팅을 한 투자자들은 3년만에 50%의 환차익을 먹었겠네요 플라자 합의 이후 이러한 급격한 엔화강세는 일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오늘은 일본버블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대외적인 상황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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