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경제사- 2차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일본 한국전쟁을 통해 다시 살아나다.일본 경제 역사 2020. 11. 25. 10:30
연 이은 전쟁과 승리로 일본은 급속도로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일본 스스로 서구 제국주의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데 따라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죠? 몇 번 전쟁에서 이기더니 압도적으로 전력차이가 나는 미국과 전쟁을 돌입하면서 처참하게 패망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정부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였고 미국은 포츠담 선언의 집행을 위해 당시 태평양의 미국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원수가 일본에 오게 되고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에 연합국 군 최고사령부(GHQ)가 10월 2일 도쿄에 설치됩니다.
GHQ는 1945년 8월부터 시작하여 1952년 4월까지 일본을 점령하며 통치를 하게 됩니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오랜 봉건제 사회였으며 사무라이 문화의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온 일본 국민들은 자신보다 강하면 충성을 맹세하고 약하면 가차 없이 목을 베어버립니다.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살아온 일본에게 패자와 약자를 위한 배려 따위는 볼 수 없습니다.
철저한 상하관계 갑을 관계가 존재하며 강한 상대에게만 머리를 조아립니다. 현재까지도 일본은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9월 2일 미국은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에게 항복 문서 서명을 받게 됩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철저하게 일본의 머릿속에 "너희는 우리보다 한참 밑이라는 걸" 인지시켰고 지배적인 태도를 보이며 일본을 완전히 굴복시킵니다.
맥아더는 일본 천황과의 사진을 일본 국민들에게 공개합니다.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 천황은 신이자 유일한 주권자 였으며 대중들과 항상 거리를 두며 크고 인상적으로 보이는 각도의 사진만으로 볼 수 있던 신성한 존재 였습니다. 하지만 맥아더와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미국은 적극적으로 사진을 발행 시킵니다.
이 사진을 통해서 일본의 국민들에게도 우리가 갑이다 라는 걸 각인시킵니다. 1946년 1월에는 천황의 인간선언을 통해 천황의 신격화를 부정했고, 1946년 11월 전쟁포기를 선언하는 평화헌법이 공표됨으로써 비군사화를 위한 조치가 이루어 집니다. 미국이 만든 이 헌법은 지금 까지도 쓰여 지고 있습니다.
초기 GHQ를 설치한 이유는 전범국가인 일본을 철저하게 다시는 회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본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군국주의적 요소, 비민주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게 행운이 찾아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구조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소련을 필두로 하는 공산주의는 중국대륙(1949년 중국공산당정권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언)까지 확장되었고 동 아시아에서 이러한 공산세력 확장은 미국의 안보까지 위협 받을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막는데 있어서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으며, 미국은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일본에 대한 점령정책을 대폭 수정합니다. GHQ는 일본을 동아시아에 사회주의 세력을 막기위한 거점으로 쓰기 위해 우선 피폐해진 일본 경제를 다시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일본 경제를 다시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기초 산업(철강, 석탄, 전력, 비료)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며 경기회복을 기대했지만 당시 일본은 전쟁 경비 조달을 이유로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했었는데 이러한 국채 발행의 결과로 시중에 통화량은 이미 흘러 넘치는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을 살리기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더욱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킵니다. 패전 직후부터 계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일본 국민들과 많은 기업들이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에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1949년 이케다 하야토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정부는 돈을 더 이상 빌리지 않고 재정 수입(세수)만을 통해 지출을 하게 했고, 각종 보조금 또한 중지 시킵니다. 이러한 강력한 긴축정책의 결과 인플레이션은 수습되었지만, 시중에 돌던 풍부한 유동성이 갑자기 마르자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실업자들이 폭증하며 일본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두번째 행운이 찾아옵니다. 바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은 우리가 알다시피 폭발적인 공급과 수요가 발생합니다. 긴축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불황에 직면한 일본에게 한국 전쟁은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UN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 경제는 급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 수출의 대부분이 군수조달과 관련 있었으며 한국전쟁은 일본 경제회복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정치가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다시 한번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일본경제는 연평균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게 됩니다. 다음시간에는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경제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의 시작은 플라자합의 이후 부터이다. (1) 2020.11.27 일본경제사 -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일본 또한 존재 할 수 없다. (1) 2020.11.26 일본경제사 -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 대전 연이은 승리에 자아도취된 일본 (0) 2020.11.24 일본경제사 - 메이지유신 시작과 일본의근대화성공요인을 알아보자. (0) 2020.11.23 일본경제사 - 에도막부 시대 메이지유신의 근대화 기반을 다지다. (0)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