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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사 -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 대전 연이은 승리에 자아도취된 일본일본 경제 역사 2020. 11. 24. 10:30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을 했고 연이어 전쟁에서 승리하며 동아시아 국가중 식민지가 되지 않고 서양 열강들과 대등하게 식민지를 경영하는 나라가 됩니다.
전쟁을 통하여 일본의 공업화가 빠르게 발전하지만 러일전쟁은 양국에게 상처만 안겨준 전쟁이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양국의 국력이 고갈되었고 자국내에 국민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니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급과 수요가 사라지고 급속도로 공급과 수요가 위축되어 경기가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한방에 해소시켜준 것이 바로 제 1차 세계대전입니다. 일본은 미국과 같이 전쟁기간동안 주된 전쟁터 바깥에서 유럽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계속 해서 공급했고, 전쟁으로 인한 군수물자의 수요 급증은 일본의 조선, 철강, 섬유 등의 분야에 엄청난 발전을 가지고 옵니다.
일본은 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 아시아로 들어오던 유럽제품들이 공급되지 않는 기회를 이용해서 일본은 해당지역의 시장점유율을 늘려 나갑니다. 이러한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물자 수송에 있어 선박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일본 정부는 자국의 해운업과 조선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되고 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세계 3위의 해운국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또한 영국의 요청으로 일본이 8월에 전쟁에 참전을 선언하고 독일의 관하에 있던 산둥 반도의 칭다오를 시작으로 중국영토를 침략하면서 유럽열강들이 정신 없는 틈을 타서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더욱더 확대해 나갑니다.
일본은 1915년 중국 정부에게 21개조 요구를 통하여 중국 주권을 침해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세력확장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제 1차세계대전은 러일전쟁 이후 침체 되어가는 일본의 경기를 다시 살렸고 유럽에 대한 수출이 급증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미국과 영국에 이은 강대국으로 급부상 하게 됩니다.
계속된 승리로 인해 일본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우리는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에 도취되었고" 중국 침략까지 성공한 일본은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경제 호황기는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발생하며 끝이 나게 되고, 미국의 대공황은 전 세계 수요를 위축시켰으며 그로 인해 일본 또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군부세력은 이러한 경기불황을 기회로 정당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정당을 대신하여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으며 군의 영향력은 더욱더 강화되기 시작합니다. 군부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국 만주국을 수립합니다. 이러한 일본의 대 아시아확장 정책에 국제사회가 일본의 만주 침략을 비난하며 국제적으로 고립시키지만 일본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연맹을 탈퇴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에 반발한 미국이 1939년 미일통상항해조약의 폐기를 통보하였지만 중국과의 전쟁을 중단하지 않고 독일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체결하며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됩니다.
이에 맞서 1941년 7월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는 일본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하며 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을 기점으로 일본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일본이 호경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대미 수출 수입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가능했지만 이와 같은 경제봉쇄로 인해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인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에 일본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섬 등에서 생산된 석유를 미국 함대의 방해 없이 안전하게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1941년 12월 진주만을 공습하며 일본 원유 수송라인에 위협이 되는 미국을 제거 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아시아를 백인 지배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을 가치로 내걸고 아시아 전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 뒤로 일본은 동남아 전선에서 승승장구하며 1942년 동남아에서 259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며 미국의 대일 석유 금지조치 이전의 석유 생산량을 회복했지만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대패를 하게 되고 이후 계속되는 패배로 태평양은 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오게 되며 일본으로 통하는 모든 보급로를 차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본은 극심한 원유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제해권, 제공권을 모두 상실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일본 학생, 성별 상관없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중국인과 조선인의 강제노동 또한 본격적으로 실시됩니다. 일본 군부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을 통제하였고 은행과 그 밖에 주요산업을 국유화 하며 물가, 소비, 배급, 물자 등을 모두 통제하며 시장경제를 마비시켰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집니다.
그리고 미국은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을 시작으로 오키나와를 함락하고 8월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됩니다.
결국 1945년 8월 14일 일본정부는 연합군이 발표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중국 침략 모든 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일본은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였으며 미국과의 압도적인 국력 차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돌입한 것이 일본의 패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모든 것을 잃은 일본은 어떻게 다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해당 내용은 다음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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