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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사 - 무로마치막부에서 전국시대가 시작되다.일본 경제 역사 2020. 11. 18. 10:30
우리는 지난 시간 무로마치 막부의 탄생과 60년 동안 이어진 남조 북조의 중앙권력 싸움은 지방세력의 성장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점점 커져가는 지방세력(다이묘)의 반란을 막고 지지를 받기 위해 무로마치 막부는 다이묘들에게 기존 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조세권,군사권)을 주게 되는데, 이러한 권한으로 지방 다이묘들은 더 강력해져 갑니다.
그리고 무로마치 막부의 후계자 문제(쇼군 후계문제)가 트리거가 되며, 지방의 다이묘들의 치열한 갈등이 계속 되었고 오닌의 난(1467~1477)을 시작으로 무로마치 시대에서 약 100년 간의 전쟁 전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전국시대부터 막부와 쇼군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이제는 실력만 있다면 신분이 밑천하더라도 다이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극상이 사회 각층에 만연하던 시대, 신분 보다는 실력이 우선인 시대, 이런 시대에서 힘을 스스로 키워서 지역을 독자적으로 지배하는 다이묘들을 센코쿠 다이묘라 불렀습니다.
서로 먹히고 먹히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네 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당시에는 땅이 곧 경제력이었습니다. 해당 토지에서 일할 농민도 필수적이었기에, 농민들의 지지 또한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은광개발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국시대에 정말 유명한 다이묘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와 ,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고 있으면 됩니다.
16세기 전국 시대가 한창 일 때 당시 유럽은 대항해시대였고 동남아까지 진출하며 세력을 펼치던 시기였는데 1543년 마카오를 가다 태풍을 만나서 포르투갈 상선이 일본에 불시착 하게 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포르투갈 상인이 조총을 건내 주었고 이 과정에서 일본에 유럽의 총포기술이 전해지며 전국시대의 흐름을 타 국내에서 조총을 마구 찍어 내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순식간에 세계 1위 총기 보유국이 됩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은 왜 조총을 주며 일본과 교역을 시도하려 했을까요?
16세기에 은은 아시아 기축통화로 사용되고 있었고 모든 거래가 대부분 은을 통해서 이루어 지던 시대인데 당시 일본의 은 산출량이 전 세계 은시장의 3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은 냄새 맡은 유럽인들 일본과 교역을 안 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우리나라는 은 생산이 크지 않았기에 대항해시대의 흐름을 아쉽게도 타지 못합니다. 유럽에게 은이 많은 일본은 자신들의 물건을 팔 수 있는 너무나도 좋은 시장이었고 본격적으로 유럽이 아시아와 무역을 할 때 일본은 유럽의 지식과 문화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 유럽 문물에 호의적이었고 유럽에서 건너온 조총을 도입하여 전투를 하기 시작했고 조총은 다른 무기들보다 상대적으로 훈련기간이 짧아 많은 군인을 양성할 수 있었습니다.
1573년 오다 노부나가는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 시키고 교토를 장악 합니다. 오다는 병농분리로 전투만 하는 전문 군인을 양성시켰고 비옥한 땅 과 물류의 중심지였던 오사카에 각종 상업과 물류 관련 세금을 철폐하며 자유로운 시장 경제가 활성화 되었고 그 결과 많은 인구와 돈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많은 인구와 돈은 한마디로 국방력과 경제력이었고 오다는 전국을 다스리게 되는데 1582년 오다는 혼노지라는 절에서 부하인 이케치 미쓰히데에게 습격 당하며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자결하게 됩니다.
오다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쓰히데를 처단하고 이 혼란을 잠재워 버립니다. 자기의 힘으로 밑바닥에서 최정상까지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러 다이묘 가문들을 복종 시키며 1590년 전국 통일을 하게 되었으나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전국시대를 막기 위해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돌립니다.
그게 바로 임진왜란 (1592)이 었습니다. 권력강화를 하는데 있어서 전쟁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조선 침략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일본군은 통합된 군대가 아니라 각각 지방 다이묘들의 군대를 차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졌네요? 결과는 예상이 되시죠? 임진왜란의 패배로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못한 다이묘들의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불만을 표출할 명분이 생깁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아들은 너무 어렸습니다. 당연히 권력다툼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과거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하고 2인자 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변방으로 보내게 되는데 하필 보낸 곳이 일본 최대 평야인 관동 평야지역인 에도 였고 그곳이 지금의 일본의 수도 도쿄 입니다.
당연히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이었죠. 이에야스는 황무지에서 대규모 공사를 시행했고 이러한 이유로 조선의 파병을 피하고 자신의 세력을 온전히 보전했고 히데요시가 죽은 뒤 서서히 발톱을 드러냅니다.
히데요시파와 이에야스파 세력간 다툼이 시작되었고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히데요시 세력을 격파합니다.
여기서 일본의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 병력이 우세 했지만 전투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철저히 봉건제 사회 지방분권 사회입니다. 의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충성 또한 없습니다. 실리만 있을 뿐입니다.
일본 전체의 이득이 아니라 자신의 이득이 우선이었고 이를 잘 이용한 이에야스는 상대 세력에게 밀서를 보내며 배신을 권유합니다. 정작 전쟁은 시작되었는데 눈치보고 방관하고 배신하고 도망가고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죠. 하지만 이에야스 세력은 조금이라도 열심히 싸워 전쟁의 공을 인정받아 좋은 땅을 받기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일본은 뼈속까지 실리가 앞선 나라입니다. 강한자에게는 한 없이 약하고, 약해 보이면 모든 걸 가져갑니다. 이렇게 도쿠가와는 반도쿠가와 세력을 제거하고 1603년에 자신의 근거지인 에도에 새로운 막부를 수립하게 되는데 이 에도막부는 250년이 넘게 일본을 통치하게 됩니다.
이 에도 막부시대부터 우리나라와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건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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