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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사 - 메이지유신 시작과 일본의근대화성공요인을 알아보자.일본 경제 역사 2020. 11. 23. 10:30
반 막부세력의 중심에 섰던 사쓰마와 조슈번은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체재를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게 됩니다. 기존에는 막부가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번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고 자치권을 허용했으나, 일본이 근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지방 분권적인 봉건제를 해체 시키고 덴노를 중심으로 하나가 된 국가를 완성 시켜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권력에 반발하는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사쓰마와 조슈의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정부군을 창설하며 이 무력을 바탕으로 280여개에 이르던 번을 해체하고 새로운 행정단위로서 72개의 현으로 재정비 됩니다.(폐번치현 1871)그리고 과거 다이묘들이 관리하던 번의 토지를 대상으로 중앙정부가 세금을 징수하며(판적봉환1869) 일본은 근대 국가로서의 정치적, 재정적 통일이 완성되게 됩니다.
여기서 덴노를 중심으로 한 국가라 하지만 덴노는 일본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고 실제 권력은 조슈와 사쓰마 내각을 장악했으며 모든 고위급 총리와 장관은 조슈 사쓰마 번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까지도 많은 고위급인사들이 조슈와 사쓰마 번 출신이기도 합니다.
조슈 출신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조정의 칙령을 발포하였고 1873년에는 징병령이 공표되며 이로써 일본에 근대적 군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체제를 안정시키고 1871년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도입해 100여명으로 구성된 이와쿠라사절단을 해외에 파견하게 됩니다.
요코하마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하여 660일 동안 워싱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프로이센 이탈리아 등의 유럽을 방문하게 되는데 일본은 열강의 근대문물에 경악을 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은 온 나라가 공장이었으며 이때 당시 런던에는 지하철이 있었습니다. 서양문물을 직접 경험하고 돌아온 사절단은 메이지 정부가 서구화를 지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본래 사절단의 임무는 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 였지만 서양의 발전을 보고서 조약 개정보다는 아직도 전통적인 사회에 머물러있는 국내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일본이 열강들처럼 강해지지 않으면 불평등 조약을 개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열강들의 정치, 경제, 헌법, 교육 모든 분야를 기록하여 돌아왔고 각 국가들의 강점만을 흡수하여 부국강병에 힘씁니다. 메이지유신 직후의 일본에서는 민간부문에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토지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정부가 직접 산업의 여러 부분에 투자하며 조선소, 광산, 공장을 중심으로 국가가 경영을 했고 당시 기술이 없는 일본은 정부재정을 통하여 외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며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게 됩니다.
1872년 12월 근대화의 필요조건인 철도 개통식이 열렸고, 철도 산업을 일으키는 근간이 되었으며 일본 전역에 철도가 깔리게 됩니다.
철도가 깔리니 물류 운송이 활발해 졌고 1870년 중반부터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민간산업이 활성화 되기 시작합니다.
섬유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하며 만주, 조선 시장에서 영미제품을 차례로 몰아낼 정도로 발전 하였고 제사업에서도 중국을 누르고 수출 1위를 차지합니다.
1894년 7월 중국과 일본이 조선에 대한 이권을 놓고 전쟁을 하게 되는데 신식군대를 갖추었던 일본이 승리하며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 하였고, 이 조약을 통해 청나라의 영토인 랴오뚱 반도, 타이완, 팽호 열도를 받았으며 청나라에게 받은 막대한 배상금을 통해 해군과 육군의 전략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약 이후 러시아, 독일, 프랑스는 일본에게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당시 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할 기술력이 없는 일본 빠르게 이를 받아드리며, 일본은 청나라를 조선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제는 러시아와 대립을 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는 최강 패권 국가였던 영국의 지배권에 벗어나 있는 곳에 눈을 돌리고 있었고 그 곳이 바로 아시아 였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경쟁자이자 라이벌이었고 일본 입장에서도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견제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은 영국과 일본은 1902년 1월 영일동맹을 채결하였으며 영국은 고속함대를 일본에게 공급하고, 막대한 전비가 드는 일본은 대량으로 국채를 발행하며 러시아의 동아시아 세력 확장에 반대하는 영국과 미국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고 대량으로 발행한 일본 국채를 열국과 미국이 사주며 전쟁에 필요한 전비를 충당하게 됩니다.
러시아 일본을 가볍게 이길 것 같았지만 일본은 러시아에게 연전연승을 했고 1905년 5월 쓰시마 해전에서 무적 러시아 함대가 완패하게 되며 미국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강화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한국은 완전히 일본의 지배권에 들어오게 됩니다. 1911년에는 불평등조약이었던 미일통상조약을 개정하고 다른 국가들과도 체결에 성공하며 서양열강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해 일본 전역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이어졌고 1906년부터 야하다 제철소가 대대적인 확장을 시작했고, 1907년에는 일본 제강소가 설립되어 모든 산업의 기초자재인 철의 자급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조선 기계 부문에서는 서구 열강 수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동양 국가중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고 서양열강들과 대등하게 식민지를 경영하는 나라가 됩니다.
연이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1910년에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며 완전한 제국주의 국가로 진입하게 됩니다. 패배를 모르는 일본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일본이 어떻게 무너지게 될까요? 다음 게시물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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