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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경제사 - 에도막부 시대 메이지유신의 근대화 기반을 다지다.
    일본 경제 역사 2020. 11. 19. 10:30

    지난 게시글을 통해 전국시대에 각 지역을 할거하고 있던 다이묘들의 끊임 없는 전쟁과 그 전쟁을 종식시키고 전국 통일을 이루는 인물들을 시대순으로 알아봤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가 다이묘로 있던 에도에 막부를 세우고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게 되며 이 시기를 에도 막부 시대라고 부릅니다. 

     

    메이지 유신이 근대화를 이룬 시기라고 하면 에도 막부 시기에는 근대화의 기반을 다진 시기입니다.

     

    막번체제

    쇼군인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가 일본의 중앙정부가 되며 막부에 충성을 맹세한 다이묘 가문들이 지방의 260여 개의 번을 다스렸습니다. 이걸 막번 체제라 불렀습니다. 

     

    도쿠가와가 막부를 수립하고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각 지역을 통치할 지도자들을 새롭게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쿠가와는 3개의 등급으로 나눠 통치할 지역을 부여 했으며, 도쿠가와와의 친인척 관계에 있던 다이묘(신빤다이묘)들에게 에도 주변의 영지를, 도요토미를 따랐던 다이묘(도자마다이묘)들에게는 에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의 영지를 나누어 주었고 그 사이사이에 감시와 통제를 하기 위해 자신의 최측근 다이묘(후다이다이묘)들을 배치하면서 반란이나 만약에 사태를 대비합니다.

     

     

    막부는 각 번의 다이묘들에게 행정, 재정 군사권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막부에 상납하는 세금 또한 없습니다. 모든 권한을 각 번의 다이묘들에게 보여한다는 건 우리가 알다시피 굉장히 위험한 결정 입니다. 이러한 독자성에도 불구하고 막부가 다이묘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근교대

     

    첫 번째는 참근교대제입니다. 에도막부는 다이묘들을 1년은 해당 영지에서 1년은 에도에서 살도록 했고 가족(볼모)들은 계속 에도에 머무르며 다이묘 자신도 인생의 절반을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영지 뿐 만 아니라 에도에도 거처를 마련해야 했는데 이러한 이중살림은 각 번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번의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지방의 260여개의 번이 있는데 다이묘들 1년에 한 번씩 에도에 와서 쇼군에게 인사하러 옵니다. 그럼 에도에 올 때 어떻게 하고 올까요? 당연히 다이묘 체면이 있는데 대규모 인원을 데리고 일본 전역에 돈을 뿌리며 오게 되겠죠. 덕분에 참근교대로 인해 교통과 물류,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천하보청

     

    두 번째 는 다이묘들에게 세금 대신 천하보청을 부여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투자를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대규모 공사에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게 되죠.

     

     

    개인이나 기업이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정부가 해줘야 하는데 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각 번들의 다이묘들에게 부과하면서 에도를 중심으로 성곽 축성, 제방, 상하수시설, 도로건설 등의 공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천하보청에 따라 세금 징수가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로 의무를 부과 했기 때문에 다이묘들은 막부의 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 정해진 기일 내에 높은 완성도로 사업을 완료할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 효율적으로 인프라가 구축 되기 시작했으며 

    모든 도로와 뱃길이 에도를 통하게 됩니다.

     

    에도경제

     

    이러한 제도를 통해 에도 중심으로 돈이 어마어마 하게 뿌려집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몰려 들겠나요? 각 번의 다이묘들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으로 이어집니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며 교통, 통신, 물류가 활성화되고 화폐 경제 또한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에도 인구는 100만명에 육박했고 당시 런던이 87만 파리가 58만 인 걸 보면 대도시의 성격을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든 교통의 중심지인 에도는 엄청난 상업 물류의 본거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인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고 신분상 최고 위치였던 무사계급의 세력이 점점 상인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에도시대 때부터 상품시장경제의 발달로 봉건적 신분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태동이 시작됩니다. 

     

    나가사키 도지마

    마지막으로 막부는 주요 은광 금광 채굴권과 화폐 주조권을 독점하고, 쇄국정책을 펼칩니다. 지방세력들의 힘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지속적인 유럽과의 대외무역은 지방세력의 주요 자금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막부는 나가사키 데지마 무역항을 독점하며 네덜란드만 특별히 교역을 허용하며 서양 문물을 지속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기존에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교역을 했지만 포교를 계속해서 강요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종교가 퍼지게 되면 통치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막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몰아 냈고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종교 강요 없이 상품교역에만 집중했기에 쇄국정책이었지만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했습니다. 

     

    네덜란드 풍설서

    네덜란드는 나가사키항에 입항할 때 마다 세계 정세를 요약한 풍설서라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보고서 덕분에 막부는 유럽과 전세계의 근황을 매년 업데이트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근황을 보고 받으며 막부는 서양이 나날이 발전하는 걸 알게 되고 그 세력이 점차 커져 중국에서 동쪾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일본의 위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꾸준히 상기시켜 주었고 이후 개항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국방력은 돈에서 나옵니다. 모든 자본이 에도에 집중이 되는 체제를 만들어 버리니 에도 막부는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뤄낸 에도 막부는 250년 이상 평화로운 시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죠. 막부 말기 들어 농민과 상인 사무라이와 같은 주요 계급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 외부에서도 변수가 생깁니다.

     

    에도 막부에게 어떠한 위기가 닥친 걸까요? 해당 내용은 다음 게시물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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