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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사 -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일본 또한 존재 할 수 없다.일본 경제 역사 2020. 11. 26. 10:30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에 GHQ가 설치되어 일본을 점령하며 통치를 하게 됩니다. GHQ의 초기 목적은 일본을 다시는 회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소련을 필두로 하는 공산주의를 막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던 일본을 적국에서 잠재적 동맹국으로 전환하며 일본경제재건에 힘쓰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일본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오랜 불황이 지속되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일본은 전쟁특수를 누리게 됩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 경제의 각 지표들은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했으며 다시 한 번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 하게 됩니다.
미국의 대일 점령 정책의 전환 이후 일본과의 강화조약을 서둘렀고 미국을 포함한 49개국과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당시 미소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일원이 되어 움직여 줄 나라는 일본 밖에 없었기에 일본에게 제 1차 세계대전의 독일처럼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한다면 일본의 경제재건 이 지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많은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합니다.
일본은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경제원조나 기술 협력 등으로만 배상문제를 해결하게 되며 이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은 독립적 주권국가가 됩니다.
동아시아지역의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이 더 시급한 미국은 대일강화조약이 맺어지는 날 미일 안보조약 또한 체결하며 일본 각지에 미국 군인을 주둔시키며 일본을 동북아 전략의 전진기지로 쓰게 됩니다.
일본 또한 국가의 안보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안보는 미국에게 모두 다 맡기고 국가의 경제발전에 모든 집중을 쏟습니다. 냉전이 격해지던 시대에 모든 국가들이 국방예산을 크게 증가시킬 때 일본은 미국의 안보지원으로 국가 예산을 각 산업 발전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가 일본 고도성장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엔 환율을 1달러당 360엔으로 고정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저 환율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우선 확보시켰고 이러한 고정환율은 1970년까지 이어집니다.
1950년 중반부터 각 산업 부문에 신 기술을 도입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자동차, 전력,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에 설비투자에 주력합니다. 투자는 투자를 부르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설비투자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중화학 공업의 수준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고 일본기업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갑니다.
일본정부의 계획경제정책으로인해 민간투자까지 활발해지며 개인들의 소득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산업부문에 자본을 공급하였고, 국민들의 소득 증가로 인해 구매력이 높아졌고 내수시장 또한 확대가 됩니다.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는 필연적으로 대량생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이 대량생산을 받쳐주는 민간 수요가 존재함으로써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고 1964년에 OECD 회원국이 되며 수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품질과 가격면에서 뛰어난 일본 상품이 전 세계에 팔리기 시작했으며 1968년에는 일본의 국민총생산이 서독을 누르며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미국의 뒤를 잇는 국가가 됩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불황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1965년부터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일본은 1966년 건설국채를 발행하며 전체적인 산업재정비와 적극적인 공공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호경기는 57개월간 지속되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안보지원으로 인해 국방비의 비중이 적은 일본은 예산을 기술 연구와 민간 산업 개발 부문에 투자했고 이러한 선택은 일본제품의 품질향상으로 이어지며 값싸고 질 좋은 일본제품은 전 세계 시장에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1차 오일쇼크가 터지기 전까지 연 평균 10%가 넘는 경제성장율을 기록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바깥 상황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때 당시에도 기축통화가 달러였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언제든지 달러와 금의 태환이 가능 했었습니다. 이 의미는 달러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과도하게 통화량을 늘리면 안되는데 기축통화의 특성상 여러 나라에 통용되야 하니 충분히 달러를 공급해줘야 합니다.
통화량을 보유하고 있는 금에 맞춰 발행을 해야 하는데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통화를 쓰니 충분히 공급 해줘야 한다? 앞뒤가 안 맞죠? 심지어 베트남 전쟁은 12년 동안 이어져 왔고 이로 인해 해외 군수품 구입을 지속적으로 확대합니다. 어떻게 ? 금 비율과 상관없이 달러를 찍어서 물품을 사는거죠.
그렇게 되면 모든 국가들에 외환보유고에 달러가 가득 쌓이게 되겠죠?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미국에게 금태환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금과 무관하게 찍어낸 달러를 다 바꿔줄 금이 없었습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 의무를 중단하게 되니 달러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달러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오르게 되며 인플레이션 시대에 진입합니다. 인플레이션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게 바로 국제 유가입니다.
1970~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원유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컸는데 이 원유에 대한 결제 통화가 달러니 달어의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가겨 또한 오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위태로운 유가의 가격은 1973년 1차 오일쇼크(4차 중동전쟁)를 통해 폭등하게 됩니다.
일본 역시 모든 산업에 필수적인 원유 가격이 폭등하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과 재정지출을 억제하며 긴축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책들은 일본 경기를 냉각시키며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고도성장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는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의 파산을 초래했고 세계경제가 정체되었습니다. 반면 일본 제조업에도 위기가 있었지만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채 일본정부는 지속적으로 적자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며 기업들에게 금융지원을 했고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기술개발과 공장자동화 등으로 원가 절감에 나서게 됩니다.
1980년 이후부터 글로벌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며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고 1980년대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었고(일본 현재 시장점유율 약 3.8%) 1980년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 차지를 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 슬슬 일본이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일본 제품은 단연 최고였고 G2국가로 자리 매김하며 당시 미래산업이었던 반도체산업까지 일본 기업들이 선점하게 되는데 앞 길이 창창할거 같던 일본이 어떻게 현재까지 장기불황에 빠지게 됐을까요? 해당 내용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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