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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사 - 본격적인 일본버블시대가 시작되다.일본 경제 역사 2020. 11. 30. 10:30
1980년~1985년까지 이어지는 달러 강세 흐름 속에서 일본은 엔저 정책을 바탕으로 수출을 크게 늘리며 급속도로 성장했고 일본은 세계 최대의 무역 흑자국이 됩니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달러벌이를 했지만 상대인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적자가 점점 심각해져갔고, 이에 플라자 합의를 통해 G5국가들은 달러약세 공조에 동참합니다.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의 시작은 플라자합의 이후 부터이다.
미국은 냉전체제가 격화되자 일본을 적국에서 잠재적 동맹국으로 전환하며 아시아 패권을 완벽하게 잡기 위해 일본경제재건에 힘쓰게 됩니다. 일본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은 전범기업들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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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꾸준히 엔화를 절상하게 되는데 이러한 엔화절상은 수출기업들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예를 들어 1$당 250엔 수준의 환율이 계속해서 강세가 돼서 1$당 100엔이 된다면 500엔의 가치를 가진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원래는 2$만 받으면 되는데 이제는 5$를 받고 팔아야 하는 상황인거죠. 미국의 소비자 입장에서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엔화 강세는 일본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낮아지는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엔화강세시작 이렇게 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 수출 기업들의 수출이 둔화되기 시작했고 엔고 불황이 찾아오게 됩니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처럼 수출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수를 키워 성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봤을 때 지금 상황에서는 수출로는 답이 보이지 않기에 내수경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엔고로 인한 경기 악화를 대처하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은 1986년 1월 정책금리를 5%에서 4.5%로 인하했고 그 이후로도 정책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며 1987년 2월에는 역사상 최저 수준인 2.5%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일본 기준금리 엔화는 달러대비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돈 냄새 맡은 외국 자본들 일본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너무 나도 좋은 상황이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내수 부양을 하겠답니다. 그러면 일본 기업들 또한 그 수혜를 받을 테니까 일본 기업들의 주식을 사놓는다면 해당 주식은 오르게 될 것입니다.
일본주가지수 잠깐 여기서 엔화가 계속해서 강세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수출이 둔화되고 있는데 실적이 전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외국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주가가 안 움직여도 상관없습니다. 엔화의 강세로 환차익을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주식까지 올라간다면 올라간 만큼의 차익과 환차익까지 먹을 수 있으니 전 세계 자금들이 일본으로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플라자합의 이후 계속되는 주가 상승으로 증권시장을 통해 기업들은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며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확대됩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에게 자금을 융자해주던 은행들은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은행들은 수익개선을 위해 가계를 대상으로 대출을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까지는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왕성했기에 규모가 작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되니 은행에서 차입하는 자금 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당연한 결과로 은행 간의 대출 경쟁도 치열해지기 시작합니다.
수익에 목마른 은행들은 가계로 눈을 돌리며 부동산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출을 장려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담보대출이나 자동차 할부금 등 큰 돈이 들어가는 자산을 구입할 때 금리 조건은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이 당시 일본 금리는 지속적인 인하 흐름을 보였고 개인들 입장에서 대출받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됩니다. 주가 상승뿐 만 아니라 역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까지 자금이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의 주택담보대출비율, 즉 LTV(loan to calue ratio) 는 120%에 달했습니다. LTV가 120%라는 건 쉽게 말해서 2억짜리 집을 담보로 2억 4,000만원을 대출해준다는 뜻 입니다. 우라나라 주식담보대출비율이 현재 40%인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될 정도의 부동산 완화 정책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집을 살 수 있는 기회였고 서민들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시대에 부동산 가격은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부동산 불패, 부동산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며 은행 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 또한 부글부글 끓어 오르게 됩니다.
주식시장부터 부동산시장까지 자금이 계속 들어오니 기업입장에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 들었지만, 국내에 부동산 광풍으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게 되니 기업들은 지속되는 엔화강세 상태에서 기업자금을 성공 확률이 적고 리스크가 큰 R&D 개발이나 신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성공확률이 확실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입장에서도 이득이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 또한 부동산 투자로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논 본사 땅값, 리조트, 사옥은 날이 갈수록 가격이 상승하며 일본은 건국이후 최고의 호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 중앙은행과 정부는 이러한 과열을 지켜만 봤을까요? 지나친 과열의 조짐이 보이면 중앙은행 입장에서 이 과열을 제어하며 속도조절을 해야 합니다. 중앙은행이 속도조절을 위해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할 때 물가상승률을 보며 판단하게 되는데 1985년 달러당 250엔 수준의 엔화가치는 1987년 초 130엔 수준까지 절상되었고 당시 물가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국제 유가 또한 오일쇼크로 인해 30달러에 거래되던 게 1986년부터 급락하기 시작하며 15달러까지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금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의 흐름으로만 봤을 때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맞지만 금리인상의 지표인 물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괜히 금리를 인상했다가 아무 문제없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어 경기가 침체되면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기때문에 금리 인상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섣불리 금리인상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미국 블랙먼데이 그리고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의 다우존스가 전날에 비해 무려 22.6%나 폭락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날을 블랙먼데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러한 폭락은 충격적이었으며 블랙 먼데이 당일 연준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유동성을 신속히 공급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금리를 내리겠다고 선언했고 서독을 방문하여 금리 인하를 요청합니다.
연준을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의 공조를 통하여 빠르게 회복하지만 금리인상을 고려하던 일본입장이 난감해 집니다. 미국 금융시장 폭락으로 인해 전 세계가 금리인하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포기하게 되고 블랙번데이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버블 과정의 초반부를 알아봣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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