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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의 형성과정과 붕괴 과정
    일본 경제 역사 2020. 12. 14. 16:23

    일본 버블 경제 당시 20대 초봉 천만엔(일억), 면접만 봐도 만 오천엔(15만원),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남자친구의 연봉 (2천만엔) 2억원, 고등학생들 세뱃돈 평균 300만원, 경기가 너무 좋아 구인난에 시달리는 기업들 직접 학교로 와서 사람들을 데려가고 직원을 뽑으면 다른 곳으로 이직 못하게 하와이로 무료 여행을 보내 버리는 당시 상황 여러분들은 상상이 가시나요? 

     

    플라자합의 이후 계속되는 엔화절상으로 인한 수출 부진을 막기위해 일본 정부는 내수부양을 통해서 성장을 도모하려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가와 지가의 급격한 상승이 있었음에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지속적인 상승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1980년대 후반 일본 사회에 퍼져 있었고 장기화되는 금융완화 정책은 더욱더 경기 과열을 만들어 냅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경기 과열을 막기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데 금리인상의 지표인 물가가 안정적이니 금리를 올릴 수 있는 명분이 없었고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가 터지며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자자는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못 올릴거같으니 다시 본격적으로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엔화절상으로 인해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건의 가격 또한 저렴해 졌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의 소비 심리는 증폭됩니다.

    지금 당장 내 손에 현금이 없더라도 내가 사논 집값, 주식이 계속해서 오른다면 심리상 돈을 번 느낌이 드니 돈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1985년 12000이었던 닛케이 일본 주가 지수는 계속해서 상승하여 1989년 말에는 39000까지 파죽시세로 주가는 날라갑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세계 50대 기업순위에 70%를 차지할 만큼 잘나 갔었고 엔화가 달러대비 강세가 지속되면 엔화를 달러로 환전하여 해외로 나가는 순간 부자가 되는 효과를 가지고 옵니다. 우리가 동남아로 여행가는 상황, 유럽인들이 한국을 오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미쓰비시는 미국의 록펠러 센터를 매입하고 소니는 컬럼비아 픽쳐스를 파나소닉은 유니버셜 픽쳐스를 매입하며 일본 기업들 벌어들인 수익으로 미국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인터넷 산업, 반도체 산업과 같은 3차 산엽혁명을 주도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일본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기업들을 바짝 쫓아오기 시작합니다. 전쟁에서 폐허가 된 친구 살려 놨더니 이제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밥그릇도 넘보기 시작하고 미국 기업들을 매입하거나 M&A하며 미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합니다.

     

    80년대 후반에는 일본이 세계 최강이라는 말까지 돌아다닙니다. 미국은 89년부터 슈퍼 301조를 발동하며 일본을 본격적으로 때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일본이 자신들의 기술을 마음대로 훔쳐간다며 일본이 하려고 하는 모든 신기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에 제제를 가했고 일본이 뭘 하려고 할 때 마다 손발을 묶어 버립니다. 당시 일본은 자국의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 산업들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이러한 정부정책이 수입장벽이 되어 미국의 적자를 계속 키우고 있다며 일본에게 구조개혁을 하라고 압박을 넣습니다.

     

     

    그리고 1989년부터 미일 구조 협의를 하게 되는데 협상 내용의 골자는 일본은 대규모 투자 및 소비를 확대하고 기업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조항들이 일본에게 매우 불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합의를 하게 됩니다. 

     

     

    과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 주도하에 대규모 국토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안 그래도 부동산 시장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재개발이라요?.. 정부가 이렇게 나서 주는데 하늘에서 내려주신 기회 아니겠습니까? 기업이고 개인이고 할 거 없이 대출이란 대출은 다 받아서 부동산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버블이 심해진 만큼 안정적이던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드디어 버블을 잡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은 1989년 소비세(0%~3%)를 도입하고 1989년 5월 정책금리를 3.25%로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 3월에는 5.25 8월에는 6%까지 인상하게 됩니다. 

     

     

    중앙은행의 빠른 금리인상으로 일본의 주요대출 금리도 같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을 하는 데 계속 오르는 주가에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고점징후가 슬슬 보이면서 주가 상승이 꺾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금융 정책의 전환 속에서 주가는 1989년 말 39,000을 정점으로 1990년 23,000인 40%나 큰 폭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금리가 계속 오르니 지금 아니면 못 산다 라는 심리를 더 자극하여 더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흡수되었고 이러한 지가 버블은 금융 정책의 긴축 전환 이후에도 1990초까지 계속 상승했으며 1991년에 들어서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동산 버블을 초래한 것은 1990년 3월 부동산 대상의 융자 증가율을 총 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하며 부동산 규제를 하기 시작하며 대출 금리가 점점 부담스러워지자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상업용 부동산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공업용 주거용 차례대로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상업용 부동산이 고점대비 83% 정도 빠지게 되고 아파트 또한50%이상 빠지며 일본 경제가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주가와 집값이 급락을 하는데 일본 중앙은행은 뭘 한 걸까요? 당시 중앙은행은 어느 정도 버블은 꺼져야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금리인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며 뒤늦게 금리를 인하하지만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엔 너무 늦은 조치였습니다.

     

     

    중앙은행이 경기 과열을 완화시키는 역할 또한 중요하지만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갈 때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하하며 침체되는 경제가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쿠션을 받쳐줘야 하는데 일본 중앙은행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일본경제는 높은 절벽에서 수직으로 내리 꽂혀버립니다.

     

    큰 상처를 입은 다음에 아무리 칼을 가져다 대봐야 그때는 늦은 조치일 뿐입니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버블붕괴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본 버블 경제를 배울 때 항상 붕괴 과정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는거 까진 많은 사람들이 압니다.

     

    그런데 이런 붕괴는 자본주의 역사에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근데 왜 하필 일본만 계속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을까요? 일본이 도대체 붕괴가 되고 난 뒤 어떻게 대처를 했길래 지금 이 상황까지 온건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일본처럼 똑같이 우리나라도 망할거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잘못된 대처 방법을 따라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어떻게 대처를 했길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요? 해당 내용은 다음 게시물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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