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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경제사- 일본의 장기불황의 시작 하시모토내각의 실패
    일본 경제 역사 2020. 12. 17. 21:35

    버블 붕괴 과정에서 일본 중앙은행은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주가와 지가는 모두 폭락하며 회생불가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자산시장 폭락으로 인해 회수가능성이 희박한 대규모 부실채권들이 발생했고 이러한 부실채권을 금융기관들이 떠 안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부실이 심각해지면 정부나 중앙은행에서 금융구제프로그램 등을 통해 빠르게 금융기관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여 금융기관들을 안정화시켜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당장 급한 금융기관에 부실을 해결하기 보다는 폭락한 부동산 경기부양책에 재정지출을 하며 재정을 낭비해 버립니다. 일본불황에서 교훈을 얻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빠르게 금리인하와 금융기관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해주며 경기회복을 유도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실책들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지침서가 됩니다.

     

    일본경제사 - 일본버블경제이후 경제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일본 중앙은행의 지속된 금리인상(2.5%~ 6%)은 고점징후가 보이던 닛케이 일본 주가 지수의 폭락을 야기시켰고, 부동산 규제까지 실시하며 1991년부터는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

    monsterofcapitalistic.tistory.com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지출을 해가며 경기를 살리려 노력했고 1994년 4분기를 끝으로 경제가 조금씩 회복했지만 계속해서 증가하는 정부 부채를 바라보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1992년부터 꾸준히 상승하여 1996년 정부부채 규모 70%에 육박합니다.

     

     

    지금 같으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보이겠지만 이 당시에는 위험한 수준이었습니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며 1996년 1월 하시모토 내각이 출범 합니다. 하시모토 내각은 재정 건전화를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하게 되는데 소비세율 증가로 민간의 소비지출이 극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소비지출이 줄어드니 경기는 다시 재 하강하며 기업들에게 타격을 주고 과도한 부채에 허덕이던 기업들이 파산하기 시작합니다.

     

    기업들이 파산하니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의 부실화는 더욱더 심해져 가는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기준금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국 내에서 투자처를 찾아 큰 수익을 내기는 힘들었죠.

     

    많은 기업들과 보험사, 은행들은 해외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당시 한창 고도성장을 하고 있던 이머징 국가들에 투자를 해논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997년부터 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홍콩 한국 등 대부분 이머징 국가들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일본이 투자한 이머징 시장의 주식과 채권들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는데 이때부터 간신히 버텨오던 금융기관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지게 됩니다. 1997년 11월 산요증권의 파산을 시작으로 홋카이도타구쇼쿠은행 그리고 4대 증권사인 야마이치 증권까지 파산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파산 소식으로 인해 예금 인출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증가했으며 다른 금융기관들에게 전이되어 일본 금융시장 전체가 마비 되기 시작합니다.

     

     

    정부는 이 지경이 되서야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경기 침체의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일본 정부는 금융권에 과감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됩니다.

     

    정부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도로나 다리를 놓는다고 부실화된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이 계속 지연되었고 그로 인해 실물경제에 돈을 뿌리는 심장역할을 하는 금융기관들은 버블 경제 이후 1990년 후반까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만약 버블이 터진 당시 금융기관들을 먼저 지원했다면 장기불황 또한 지속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시모토내각

    하시모토 내각은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건전화 정책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긴축정책으로 1998년 마이너스 성장률(-1.1)을 기록 1999년에도 마이너스 성장률(-0.3)을 기록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1994년 말 20,000선 까지 회복한 닛케이 지수는 1998년 13,000 선으로 크게 하락하게 됩니다. 일본 경기 침체로 인해 하시모토 내각의 개혁 또한 물거품이 되버립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정보 기술 붐에 힘입어 2000년부터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회복한다 싶으니까 기준금리를 0%에서 0.24%로 인상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경기는 수축됩니다. 이쯤 되면 경기 침체를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건가 싶습니다. 2000년대 말 정부부채는 100%가 넘으며 재정건전화 문제가 다시 대두되었고 2001년 4월 고이즈미 내각이 출범하며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다 라는 의지를 가지고 정부의 재정(국채발행액 30조 엔 넘지 않겠다 공약)을 건전하게 만들어 일본경제의 불안 요인을 제거 하며, 부실채권을 처리해 일본의 경제성장에 있어 방해가 되는 좀비기업들을 모조리 퇴출 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이즈미 수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다케나카 헤이조를 통해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됩니다.

     

    이 당시 대다수 은행들이 보유한 불량 채권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채권들도 있었지만 고이즈미 내각은 모든 불량채권을 처리할 것을 금융기관에 강력히 요구했고 이러한 행정 방침으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해당 기업들의 대출 회수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결과 막대한 수의 기업이 도산하게 되었고 대량의 실업자 또한 발생하게 되는데 부실채권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함으로써 일본 경제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경기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었던 부실채권은 2000년 말에 33.6조엔 이었지만 고이즈미 정권 말 12조엔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경기는 침체 될 수 밖에 없었고 경기침체로 인해 소득세나 법인세 수입이 줄어드니 정부의 재정수입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이에 고이즈미는 재정건전화 공약을 빠르게 포기합니다.

     

    이러한 구조개혁과 함께 밴 버냉키의 도움을 받아 2001년~2006년 동안 5년간 선진국 중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양적완화를 시작했으며 약 40조엔 규모로 단행된 일본 양적완화로 인해 일본 장기금리가 안정되고 단기금리도 하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통화공급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현상 임을 인지한 순간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미래 금리 상승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기업투자도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토지 가격도 상승하는 기조를 보이게 됩니다. 

     

    당시 중국 성장에 힘입은 전 지구적 호황이었으며 양적완화정책으로 엔화가 절하되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는 점점 회복했고 2003년 10,000 이하였던 주가지수는 2006년 15,000을 넘어서게 됩니다. 드디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적인 호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본격화되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판단한 중앙은행은 5년간 지속되던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부동산 가격이 또 올라갈까봐 LTV 규제를 다시 높이는데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기업들 다시 투자를 중단하고 민간 소비 지출 또한 줄어들며 다시 시장이 얼어 붙게 됩니다.

     

     

    2006년 9월 자민당 총재로서 고이즈미 내각은 퇴진하고 제 1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합니다. 하지만 1차 아베 내각은 초기 여러가지 정치적 이슈와 각료 인사들의 문제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크게 패하게 되고 미일동맹에 있어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연장과 관련하여 야당과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아베는 건강상을 핑계로 2007년 9월 26일 1년만에 수명을 다합니다.

     

     

    그리고 연이은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다로 내각의 실패로 2009년 8월의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2009년 9월16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출범하게 됩니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55년간 이어지던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디플레이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본이 정권 교체를 통해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될까요? 

     

    해당 내용은 다음 게시물을 통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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