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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사 - 1985년~1989년 유래없는 호황기
    카테고리 없음 2020. 10. 21. 12:26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80년대 우리나라는 단군이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0년대의 호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로벌 경제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70년대는 인플레이션의 시대였습니다.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았고 물가는 오르는 데 경기는 좋아 지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전설적인 인프렐이션 파이터 폴 볼커를 미국 중앙은행인 fed 의장으로 임명합니다. 

     

    폴 볼커

     

    폴 볼커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경기둔화를 감수하고 물가를 잡겠다"라는 말을 하며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합니다.

     

    이 당시 전두환은 정권은 잡았는데 막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몰랐고 특히 가장 중요한 경제에는 문외한이니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를 책임질 사람을 수 소문 했고 그 사람이 바로 김재익 경제 수석입니다.

     

    김재익 경제 수석

    전두환은 김재익 경제 수석에게 "경제는 선생님이 대통령하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김재익 경제 수석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물가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을 했고 상품가격통제, 임금억제, 금융과 재정긴축 등 다양한 정책을 피며 20%가 넘던 물가상승률을 2년만에 7%로 줄이며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했고 고속성장에 준비를 마칩니다. 

     

    전두환 정권시절 정치와 사회적으로는 굉장히 억압받는 시기였지만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에 있어서 플러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김재익 경제 수석의 능력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세계 경제로 넘어가 봅시다. 당시 미국의 폭력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달러는 초강세가 됩니다. 그 의미는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의미겠죠. 미국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보다 싼 가격에 해외 물건을 수입하려 합니다. 이때 당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나라가 바로 일본과 서독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전 세계 글로벌 기업 중 시가 총액 순위 10위 까지의 거의 대부분은 일본기업들이 랭크되어 있었죠. 

     

    일본도 우리와 같이 수출로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물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어났고 재정적자까지 심해집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미국은 1985년 9월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로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를 부릅니다. 일본의 버블붕괴의 시발점인 플라자 합의 입니다.

     

     

    미국은 일본과 서독에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무역적자랑 재정적자가 심하다. 물가 잡는다고 미국내에 있던 제조업들도 박살이 났는데 너희들은 미국에 물건을 팔기만하고 우리 물건은 왜 안사주지? 우리도 수출할 수 있게 너희 통화 가치를 절상해라" 그 당시 미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피해보는 국가는 일본과 서독이었습니다.

     

     

    수출주도로 성장한 기업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환율은 달러당 250엔 수준에서 1988년 초에는 달러당 120엔 대 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일본은 수출 경쟁력을 잃고 고전했지만 반대로 일본을 추격해오는 한국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시장과 유럽시장에 수출을 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수출 실적은 엔화 가치 상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일본 제품 대비 수출 가격이 크게 낮아져 주문이 쉴 새 없이 몰려들게 됩니다.

     

    낮은 글로벌 금리와 70년대 후반 배럴당 4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1986년 초 10달러 수준까지 내려오며 저유가시대를 만들었고, 엔화대비 낮은 원화가치이 3저가 한국 경제의 대도약을 이끌게 됩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엑셀, 프레스토 등 한국의 자동차, 석유화학 등 수출이 기록적으로 증가했고 수출경쟁력 개선으로 1989년까지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합니다. 이 시기 미국과 일본이 90%를 선점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의 전세 또한 역전이 되며 1985년 가을부터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1993년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3저에 힘 입어 기업들은 엄청난 성장을 했고 주식 거래대금은 1985년 7조 원에서 1989년 86조 원으로 4년 사이 12배로 불어나게 됩니다. 경제 성장으로 수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했고 1985년 342개 였던 상장회사 수는 1988년 500개를 돌파하며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국민들의 자금을 흡수해 지속적인 투자를 강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을 하며 국민주 개발 보급 계획을 발표했고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주식 거래 인구는 1989년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901만명으로 급증하게 됩니다.

     

     

    1980년 1월 4일 코스피지수 100p로 시작하여 1989년 3월 31일 마침내 장중 1,000선을 돌파를 하게 됩니다. 1980년 1월 4일에 비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10배쯤 커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외적인 상황을 통해 힘입은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후 경제가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다음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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